「산업안전보건법」상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의 판단
【판결요지】
피고인 A는 울산 남구 성남동 ○○○ 소재 D아파트의 위탁관리업을 하면서 주식회사 C의 현장소장으로서 소속 근로자의 안전보건을 책임지는 자이다. 피고인 A는 2012. 7. 9. 17:00경 위 D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근로자 B로 하여금 높이 1.5m A형 알루미늄 사다리 위에서 급수 배관밸브 개방 작업을 하게 하였다. 근로자 B는 작업 도중 발이 미끄러지면서 높이 1.5m 바닥으로 추락하게 하여 12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오른쪽 비골 골절 및 팔목 골절상 등의 상해를 입게 하였다.
피고인 A가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제3항 및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조에서 규정하는 추락방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서 상해를 입게 되었다고 공소되었으며, 원심 법원은 이 사건 피고인 A에 대하여 추락방지를 위한 조치를 위반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는 근로자 B가 상해를 입은 장소인 아파트 지하주차장 내부 자체는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제3항 및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라 볼 수 없고, 근로자 B가 높이 1.5m의 A형 사다리 위에 올라갔더라도 이것 역시 위 규정에서 말하는 장소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1. 문제의 소재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제3항은 “사업주는 작업 중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 토사ㆍ구축물 등이 붕괴할 우려가 있는 장소, 물체가 떨어지거나 날아올 위험이 있는 장소, 그 밖에 작업 시 천재지변으로 인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장소에는 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이하 추락방지 의무), 구체적인 위험 방지 조치에 관해서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조에 위임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조는 위험 방지 조치에 관한 사항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그 적용 대상이 되는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에 대한 기준은 제시하고 있지 않으며, 이에 대한 판단은 개별 사건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이 사건은 피고인인 아파트 현장소장 A의 지시로 지하주차장에서 1.5m A형 알루미늄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던 근로자 B가 작업 도중 발이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추락하여 12주 이상을 요하는 골절상 등 상해를 입게 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피고인 A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추락방지 의무 위반이 있었는지가 주요 쟁점이 되었다. 즉 대상판결에서는 ‘1.5m의 A형 사다리 위’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로서 추락방지 의무와 더불어 추락방지 수단이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장소인지 여부가 다투어졌다. 이에 대하여 원심과 대상판결은 각기 다른 판단을 하였는데, 이하에서는 그 근거와 타당성을 살펴보도록 한다.
2. 법원의 판단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제42조에서 추락방지 수단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밑줄은 필자 주).
제42조(추락의 방지)
① 사업주는 근로자가 추락하거나 넘어질 위험이 있는 장소[작업발판의 끝ㆍ개구부(開口部) 등을 제외한다] 또는 기계ㆍ설비ㆍ선박블록 등에서 작업을 할 때에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 비계(飛階)를 조립하는 등의 방법으로 작업발판을 설치하여야 한다.
② 사업주는 제1항에 따른 작업발판을 설치하기 곤란한 경우 다음 각 호의 기준에 맞는 안전방망(安全防網)을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안전방망을 설치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근로자에게 안전대를 착용하도록 하는 등 추락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안전방망의 설치위치는 가능하면 작업면으로부터 가까운 지점에 설치하여야 하며, 작업면으로부터 망의 설치지점까지의 수직거리는 10m를 초과하지 아니할 것
2. 안전방망은 수평으로 설치하고, 망의 처짐은 짧은 변 길이의 12% 이상이 되도록 할 것
3. 건축물 등의 바깥쪽으로 설치하는 경우 망의 내민 길이는 벽면으로부터 3m 이상 되도록 할 것. 다만, 그물코가 20mm 이하인 망을 사용한 경우에는 제14조 제3항에 따른 낙하물방지망을 설치한 것으로 본다.
이 규정에 대하여 원심 법원은 문리적 해석이라는 접근법을 취하였다. 즉 추락방지 의무에 관한 규정들은 근로자가 추락하거나 넘어질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사업주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의 사다리 위 작업은 이러한 장소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다만 사다리 위의 작업은 그 위험의 정도가 통상의 공사현장과 같이 높은 곳에서만 작업할 것이 예정된 곳은 아니기 때문에 사업주의 추락 방지 의무가 강하게 요구되는 것은 아니며, 사실 관계에서 작업 중 안전 사다리를 사용하고 안전모와 안전화를 착용한 점, 2인 1조로 작업을 시행하여 사다리의 미끄럼 방지 등에 신경썼다는 점들이 인정되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조상 의무를 제외한 일반적인 추락방지 의무는 이행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벌금 150만 원과 이에 대한 선고유예를 결정하였다.
반면 대상판결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추락방지 의무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조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되며, 그 목적과 의의를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합목적적 해석이라는 접근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대상판결에서 법원은 안전방망의 설치위치에 대하여 작업면으로부터 망의 설치지점까지의 수직거리는 10m를 초과하지 않아야 하는 점(규칙 제42조 제2항 제1호)이나 비계작업, 가설통로, 가설도로를 설치ㆍ관리할 때 그 재료와 작업상의 안전에 관하여 별도의 지침을 마련하여 규정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의 위임을 받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조가 ‘근로자가 추락하거나 넘어질 위험이 있는 장소’로 상정하여 사업주에게 비계를 조립하는 등의 방법으로 작업발판을 설치하거나 안전방망을 설치할 의무 등을 부과하는 것은 건축 또는 건설공사의 고층 작업 등을 의미하고, 적어도 이 사건처럼 이동식 사다리 등을 이용하여 작업하는 경우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3. 대상판결 검토
대상판결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를 합목적적으로 제한한 것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전체적인 체계에 비추어볼 때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제1조 목적규정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산업안전ㆍ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ㆍ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 의무’를 규정하여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한 행정관청의 관리ㆍ감독 및 위반에 대한 처벌에 의하여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확보하는 법적구조를 취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수단은 형사처벌과 과태료가 있는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부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까지 그 유형이 다양하다. 그 가운데 추락방지 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가장 중한 형사처벌인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산업안전보건법」 제66조의2) 내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동법 제67조 제1호)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처벌에 있어서 다른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 위반과의 형평성도 고려하여야 하며, 이를 무제한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는 추락방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근로자에게 심각한 위해가 가해질 수 있는 ‘고공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제한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즉 원심과 같이 원칙적으로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보면서 위법성과 책임에 따라 형량을 조정하기보다는 구성요건 해당성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대상판결에서는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를 사다리 위로 본 후 사다리 위가 추락하거나 위험이 있는 장소인지를 판단하고 있지만,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장소적 의미는 좀 더 전체적인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 같다. 이 사건에서 작업이 이루어진 공간은 지하주차장인데 현실적으로 이러한 장소에서는 비계나 안전방망과 같은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추락방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근로자가 작업 중 느낄 수 있는 불안을 방지하고 추락 시 근로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함으로, 지하주차장과 같은 공간이 근로자가 추락의 위험을 느끼고 추락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대상판결의 취지와 「산업안전보건법」 및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검토해 보면, 이 법령들에서 상정하는 추락방지 조치를 취해야 하는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는 어느 정도의 ‘고공 작업’에 한정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고공 작업’부터 이러한 의무가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으며, 이로 인하여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선,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제3항 및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조가 법률 규정, 특히 형벌 규정으로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이다. 형벌 규정으로서 명확성의 원칙이 준수되었는지 여부는 당해 법률의 입법목적에 비추어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통하여 판단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당해 법률의 입법목적과 다른 조항과의 연관성, 합리적인 해석 가능성, 입법기술상의 한계 등을 고려하여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한다. 그런데 형벌 규정과 같이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는 영역에서는 명확성의 요건이 보다 더 엄격하게 요구되어야 하며, 통상적인 일반인의 관점에서 그 가벌성 기준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제3항의 가벌성 기준과 범위가 어느 정도까지 미치는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조가 적용되는 고공 작업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은 형벌 규정의 명확성의 원칙과 관련하여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다음으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지침기능의 부재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행위위반에 대한 처벌 근거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사업장 안전을 위한 행위규범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 즉 사업장에서 유해ㆍ위험 요소가 제거되기 위해서는 사업주 및 그 구성원들이 산업안전 및 보건상 기준을 명확하게 이해함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상 추락방지 의무와 같이 그 구체적인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면, 사업장의 안전 기준으로 작용하는 지침기능은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제3항 및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조에서는 추락방지 장치에 관한 사항 외에도 고공 작업의 기준과 작업 방식에 따른 유형화가 추가될 필요가 있다.
Reference : https://www.kli.re.kr/kli/selectBbsNttView.do?bbsNo=9&key=43&nttNo=129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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