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치권은 전세계에서 가장 부끄러운 'OECD 산재사망 1위' 기록을 가진 한국기업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CEO에 징역형을 강제하는 더 강력한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다.
산재사고 통계의 중요성
정확한 통계가 산재 사망자 줄인다.
OECD 국가 10만 명당 산재 치명률 비교
우리나라 십만 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수는 5.3건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와 터키 다음으로 많다. 이는 OECD 평균인 2.7건보다 거의 두 배가 많은 수치이고, 가장 적게 일어나는 스웨덴의 7배가 넘는다. 고용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수는 2020명이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적어도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안전하지 않은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통계의 수치를 상대적으로 적용할 때에는 그 주의가 필요하다.
주) 1. 각국마다 통계 사정과 통계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가 상이한 점에 유의
2. 자료 : 국제노동기구(ILO) 2021.1.31
한국 산재 사망율은 몇위?에 대해 과거에는 21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율 1위 대한민국'으로 늘 산업재해 논란이 일 때마다 나오는 헤드라인이다
굳이 순위를 따진다면 지난달 31일 ILO가 업데이트한 '10만명당 치명률(Fatal occupational injuries per 100,000 workers)을 보면 알 수 있다. ILO의 치명률은 10만명당 산업 재해로 인한 개인상해, 질병·사망 등 치명적인 산업 재해율을 말한다. 우리 노동부의 산재 사망만인율은 사망자수에 요양 중 사망자수를 포함한 것이어서 차이가 난다.
ILO 10만인 치명율 1위는 논란과 달리 한국이 아니라 콜롬비아(2015년 기준, 18명)다. 뒤를 이어 멕시코(8.2명, 2015년), 터키(7.5명, 2016년), 미국(5.3명, 2018년), 한국(4.6명, 2019년 기준) 순이다.
각국이 ILO에 보고하는 방식이나 데이터의 연도가 차이가 나 동일한 비교는 불가능하다. 콜롬비아는 2015년, 우리나라는 2019년이 최근 데이터다. 37개 OECD 회원국이 보고한 가장 최근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은 5위라는 얘기다. 5위가 결코 자랑스러운 순위가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논란이 돼 왔던 OECD 산재 사망 1위국이라는 오명은 벗을 수 있다.
OECD 37개국 모두 다른 산재사망 기준
통계의 기초가 되는 조사 시기와 대상, 모집단이 기준이 같아야 하는데 각국 산업재해 통계의 기준이 모두 달라 상대평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산재사망 통계는 산재보험 가입자 중 산재승인을 받은 사람으로 한정해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에 가입한 공무원과 군인, 교사 등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면 미국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공무원, 영내 군인까지 포함한 통계다. 자영업자를 넣는 나라가 있고, 이를 빼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산재 사고 후 1년 내 사망자여야만 산재통계에 넣는 국가도 있다.
한국과 멕시코·뉴질랜드는 출퇴근시 교통사고(통근재해)를 산재에 넣지만, 일본·네덜란드·노르웨이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업무상 질병을 넣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등 천차만별이어서 통계의 통일성이 없다.
따라서 상대비교가 불가능하다.
시민단체인 건강노동연대 관계자도 "ILO의 치명율 기준과 우리 고용노동부의 사망율 기준이 달라 일률적으로 순위가 어떻다고 할 수는 없지만, 치명율과 사망률은 비슷한 개념으로 노동계는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율이 OECD 내에서 1~3위권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더 정확한 것은 노동부 통계를 참조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산재통계의 중요성
산업재해의 통계가 다양하고 일관되지 못함에 따라 제대로 된 정책 수립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제대로 된 산업재해예방을 위해서는 정확한 통계와 함께 구조적인 요인을 찾아야 하는데, 행정당국은 근본 사고 원인을 찾는 대신 산업안전 위반사항 중심으로 처벌에 주안점을 둔 대응만 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엄벌주의로 기업이 지키지 못할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어 감독관만 늘리고 시스템은 그대로 뒤 보여주기식 행정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잘 지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산재예방에 전문성이 있는 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도 했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외국의 경우 과로사는 개인질병으로 보며, 뇌심혈관 질환과 고혈압, 당뇨, 스트레스에 의한 사망은 산업재해에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우리는 이를 포함해 통계에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단체 관계자는 "산재 통계가 부풀려졌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산재 통계에서 빠진 부분도 많아 우리나라가 산재1위국이라는 오명은 맞다"면서도 "현재 산업재해 통계는 더 면밀하게 조사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나 경영계 모두 현재의 산재 데이터는 산재율을 낮추는데 한계가 있다며, 정확성을 높여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배경
지난해 1월에는 사업주 처벌을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잠정 집계한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수는 882명으로 전년도 855명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여기에는 지난해 4월 38명이 사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과 같은 예고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결국 사업주 책임이 더 무거운 중대재해처벌법을 도입하게 된 배경으로 작용했다.
산업재해 사망자와 부상자를 줄이는 것은 노동계뿐만 아니라 경영계나 국민 모두에게 최대의 과제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된 통계를 기반으로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반기업정서의 반감이 반영된 정책이 산업현장에서 산재 사망자를 줄이는데 기여할 지 의문이다.
산업재해 처리 비율
산업재해를 실제 산업재해로 처리하는 비율이 38.9%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74.5%는 '회사 및 원·하청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산재 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문제는 단지 산업안전공단에서 낼 돈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냈다는 데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율은 얼마나 될까? 통계청 자료(아래 그림)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산업재해율은 0.5%로 OECD 평균의 1/4 수준이다.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재해가 드물게 일어나지만, 사망 사고는 자주 발생한다는 뜻일까? 그보다는 작은 산업재해는 숨기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 사실을 숨기라는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 작은 재해에 눈 감는 일터에서 사망 사고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산재 신청이 늘어난 것은 △추정의 원칙 도입(작업기간 노출 등 기준 충족시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 △사업주 확인제도 폐지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 확대 등 근로자들의 산재 신청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영향이다.
산재보험은 산업화 정책의 일환으로 1964년 처음 도입됐다. 당시엔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을 사용하는 대규모 광업 및 제조업 분야에만 적용됐다. 하지만 지난 2018년 7월엔 비정규직이든 일용직이든 관계 없이 근로자 1인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으로 확대되는 등 고용 전분야로 적용이 확대됐다. 최근엔 택배기사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도 포함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된다.
더욱이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으로 내년부턴 산재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경영진에 대한 처벌까지 더해지는 등 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Reference : 1.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20818555716066
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3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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